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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니에미이 체제 === 1912년 3월 15일 니에미이 제국호텔에서 시작된 협상은 같은 해 5월 조약 비준으로 끝났다. 급속한 군비 확장과 식민지 경영으로 재정이 바닥난 빌베른 제국은 루이나로부터 8,500만 USD의 차관을 받는 대가로 관세 주권과 통화 정책을 내놓았다. {{{#!wiki style="border: 1px solid gray; border-radius: 5px; background-color: #F2F2F2,#000; padding: 12px" '''니에미이 금융조약 제9조''' 빌베른 제국은 루이나 공화국 원산의 상품에 대하여 종가 100분의 5를 초과하는 관세, 부가금, 수수료 기타 명목 여하를 불문한 일체의 부과금을 과할 수 없다. 본 조의 개정은 양 체약국의 서면 합의에 의하여서만 효력을 가진다. }}} 조약은 1932년 7월 23일 빌베른의 지급 불능 선언으로 사실상 파탄났다. 담보였던 금 420톤은 이미 1930년 3월 루이나로 넘어간 뒤였고, 1932년 한 해에만 빌베른에서 15만 명 이상이 극빈과 기아 관련 원인으로 사망했다. {{{#!wiki style="border: 1px solid gray; border-radius: 5px; background-color: #F2F2F2,#000; padding: 12px" 상세 내용은 [[니에미이 금융조약]] 문서 참고. }}} 관세 조항을 되살린 것은 1945년의 전후 처리였다. 패전국 빌베른과 체결된 니에미이 정산 협정은 1912년 차관의 잔여 원리금을 전액 탕감하고 금본위 관련 조항을 폐기하는 대신, 제9조의 관세 상한만을 기한 없이 존속시켰다. 금 420톤은 반환되지 않았고, 콘스탄티노폴은 이 협정에 따라 루이나에 할양되었다. 빌베른 입장에서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우고 시장을 영구히 내준 것이었고, 루이나 입장에서는 회수 불가능한 채권을 접고 실물 이익만 챙긴 것이었다. 1912년의 조약과 1945년의 협정을 묶어 '''니에미이 체제'''라 부른다. 빌베른의 전후 정치에서 이 체제는 언제나 쟁점이었으나, 어느 정권도 정면으로 건드리지 못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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